본문 바로가기
업무 과정 기록

[방향성 #01] 어떤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

by tmdgus8612 2024. 9. 26.

주니어 디자이너의 고민 

심장이 없는 저 프로덕트에도 철학이 있다니

현재 2년 6개월 차를 넘어가는 나를 사람들이 주니어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요즘 체력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눈에 염증이 돋고 매일 피곤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마음에 공부해 봤자 용두사미로 끝날게 뻔했다.
 
내가 이걸 고민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프로덕트를 만들어 가면서였다. 사용자에게 외면받지 않는 프로덕트가 되려면 필요한 기능을 사용성 좋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프로덕트의 방향이 너무 중요했다. 심장이 없는 저 프로덕트에도 철학이 있고,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데 내 철학은 대체 뭘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내가 어디 가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이것도 중요한 것 같고 저것도 중요한 것 같은데 나 너무 휘둘리나?
내가 이것도 몰라서 좀 바보 같나?

굶어죽으면 어쩌지?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돌아봤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첫 직장을 다녔을 때는 코드를 아는 디자이너가 개발자와의 소통을 잘할 수 있고 디자인 시스템이나 UI 구조를 효율적으로 짜 는데 도움이 된다길래 주말마다 개발자에게 기초 과외를 받았었고, UI 그래픽 트렌드로 3D가 대세라길래 Cinema4d도 열심히 수강했었거나, 회사에서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어떻게든 우겨서 홈페이지 랜딩 페이지 개선 작업의 주도를 잡고, 유저를 이해해 보겠다고 영업팀에 달려가서 영업하는 거 옆에서 듣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쫓아다녔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절대 헛된 지식들은 아니다. 그리고 신입 시절에 배웠던 것들을 가끔 써먹을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업무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할 줄 알면 좋기도 하지만 몰라도 되는 지식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나요?

PM이 고용되면 나는 뭘까
UXUI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역량 중 많이 언급되는 것들을 모아봤다.

- 문제 해결 능력
- 데이터 드라이븐
- 프로토타이핑
- UX 설계
- 비즈니스 요구사항 및 임팩트
-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 유저 인터뷰
- 논리력
- 디자인 시스템 이해도가 있는 분
- 마켓 리서치
- 그 외에 개발 이해도도 있다면 더 좋다
등등...

 

내가 6년 전 공고를 봤을 때와 요즘 요구하는 디자이너 인재 역량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이제 어느 채용공고에선 문제 해결 능력이라든지 데이터 활용 능력같이 그 시대에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이 쓰여 있다.
 
예전에 스타트업을 다닐 때는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 내가 디자인을 열심히 할수록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그때만큼 내가 제일 쓸모없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땐 디자이너가 심미성을 챙기는 게 판단 능력이 없는 디자이너라 생각했다. 그것도 최근까지도 말이다.

 

사용성과 비즈니스가 더 중요해지다보니 디자이너가 PM 역할을 잘하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PM 같은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쁘지 않아도 사용성만 좋고 회사에 돈만 벌어다 줄 수 있다면 효율적인 인재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PM이 고용되면 나는 뭘까? 그 PM은 나보다 더 PM스럽게 일을 할 텐데?
  
비즈니스 임팩트라는 게 그 프로덕트 안에 가장 매출이 잘 나는 부분을 어쩌다가 디자이너가 역할을 맡게 되서 잘 개선됐다면 그게 비즈니스 임팩트인가? 반면에 다른 디자이너가 매출이 안 좋은 영역을 맡아서 매출이 안 났다면 그 디자이너는 실력이 없는 건가? 그러면 디자이너는 사업 구조에 대해 더 파고 들어서 제안을 해야 하는 걸까?


이해관계자들을 잘 설득시키고 말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야겠어. 근데 나보다 더 입담이 좋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 앞에서 나는 과연 몇 마디를 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내가 하려던 말을 누군가 다 해버리면 나는 그냥 의견이 없는 사람일까? 그러니깐 아무 말이나 하자. 근데 아무 말이나 하는 거야 말로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거 아니야?

 

디자이너는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해. 근데 문제를 해결해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면?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약 사용자도, 회사도 더 이상 문제를 느끼지 않는 순간이 올까? 내가 봐도 문제 해결이 정말 필요한 것 같지가 않다면? 그러면 나는 디자이너로써의 역량이 없는 걸까?

출처 :   https://youtu.be/A3h4tA7kE-4?si=H-TQHh7_EMRtvR6t

 
유목민 같이 그냥 방황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구글 UX 디자이너 이정영님 인터뷰 영상을 보다 잊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점점 일을 하다보니 심미성과 멀어지고 있었고, 남의 전문성을 못한다는 사실로 자기혐오를 하고 있었다. 내가 디자인을 시작했던 이유, 그리고 내가 PM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역량이 심미성인데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왜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어해?

시대나 트렌드, 사회의 규정을 따라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중요하고 말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나' 다.

'디자이너는 지표도 볼 줄 알아야 한대.'
'이해관계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봐.'
'데이터 잘 모르세요?'
'디자이너는 기획을 잘해야해.'
'비즈니스에 대해 이해를 하는 디자이너가 별로 없는 것 같아.'
'목적에 맞게 기능정의서를 작성할 줄 알아야 해.'
'AI를 활용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살아남을 거야.'
등등...

 

면접장에서나 주변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전부 그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겐 맞는 말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을 주워 담기 전에 먼저 선행됐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뭘 위해 하고 있는가이다.
 
내가 디자인을 왜 선택했는가.
나는 뭘 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가.
나는 뭘 가장 잘하는가.

 

문득 작년에 한 면접장에서 디자인 리드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포트폴리오 편집에서 시각적인 걸 잘 표현해서 기대했었다고 했다. 근데 발표를 시켜보니 온통 글밖에 없고 시각적인 작업물이 빠져있는 걸 보니 실망이라는 표현을 내비쳤었다. 결국 지표도, 데이터도, 기획도 다 좋은데 우리는 디자이너 아니냐고 일침을 날렸다.

 

그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었다. 요즘 원하는 게 비즈니스, 기획, 데이터, 사고의 흐름...이런 거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점점 디자이너로서 당연한 걸 소홀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미학이 너무 좋다. 그리고 미학이 주는 삶의 가치를 알기에 디자인과를 선택했다. 디자인은 여전히 같은 물건을 다르게 만들어내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들은 호감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미학은 그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19살의 나는 패턴사로 계속 일했을 것이다.

 

당연히 업무에 필요한 기획도 하고, 데이터도 보면서 지표를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너무 좋겠다. 하지만 데이터를 능숙하게 알지 못한다고, 리서치를 버벅인다고, 임팩트를 못 낸다고, 기능 정의서도 잘 못쓴다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디자이너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서투른 것들은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점점 익혀가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미학과 함께 삶의 더 좋은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

요즘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느낀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도, 얼마나 더 현업에서 뛸 수 있도록 사회에서 용납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엔 모든 걸 잘하는 것보다 내 특징과 강점을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오히려 내가 더 오래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디자인을 왜 하는가의 관점에서는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건 어떤 기술이 등장해도 변하지 않는다. 반면,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디자이너의 현재 행위에 포커스를 둔다면 생산성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해야 한다.
-출처 까먹음-

 

전자는 디자인 철학자의 길이며, 후자는 디자인 기술자의 길이다. 디자인 철학자는 환경과 무관하게 늘 가치 창조를 하고, 디자인 기술자는 환경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는 늘 후자에 의존했던 것 같다.

 

나는 '-'(문제)를 0으로 해결해 주거나, 0임에도 '+'로 더 나은 걸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강점인 '심미성'과 결합해서 말이다. 나는 결국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창작자이며, 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나는 늘 이타심을 가지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걸 효율적으로 주기 위해 환경의 변화에는 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회사에 속하지 않은 디자이너가 되더라도 어딘가에서 미학과 함께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태도를 평생 가지며 살아가고 싶다.

댓글